이 책의 처음은 강인호가 무진으로 향할 무렵으로 시작한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아침 예배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였을 것이다. 종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안개를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소리뿐이니까. 안개는 철길 위의 한 소년을, 그리고 무진시 한복판에 있는 영광제일교회까지 빨아들였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내내 깔려있던 안개는 도가니 이 책 전체에 깔린다.

이 안개는 침묵의 카르텔을 상징하고 있다. 이 속에 가라앉던, 안개를 통과할 유일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연두, 유리, 민수.

몇 번의 사업실패로 잉여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강인호는 돈을 벌기 위해 무진으로 내려온다. 여기서 이 아이들과 선배였던 서유진을 만나면서 이 안개를 걷기 위한 소리를 내기 위해 변화하고자 하는 인물이 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하고 아내와 새미를 위해 서울로 돌아온다.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6개월이 지났다. 아이들의 안부를 전해주는 서유진의 편지를 받고 다음의 묘사를 끝으로 도가니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창밖을 응시하는 강인호의 눈이 어룽지면서 잔디밭에 앉은 흰 와이셔츠들이 그의 시야에서 뿌옇게 번져갔다. 그것은 안개 같았다.”

무진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이 안개가, 이 침묵의 카르텔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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