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꽃에 녹색 메뚜기, 푸른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보색과 비켜간 색에 관한 저자의 사진>
‘비켜간 색이 아름답다’고 화학자 슈브뢸이 말했다고 소개하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색상환의 맞은편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보색보다 살짝 양옆으로 비켜 간 이웃 색이 긴장을 덜어주는 아름다움의 표현이라고, 마음속에 담고 있던 막연한 생각에 적절한 기준을 만들어준 말이다. 세상 살아가는 것도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살짝 비켜갈 때 기쁨이 따르는 것처럼. 관심이 엮이는 것도, 우연과 필연 사이의 관계도, “커서 무엇이 될꺼야?”라는 것도. 보색은 긴장의 연속이지만 자연은 늘 비켜 간 포용으로 이어지고 변화해 나아간다”
<상어이빨을 보고 톱을 만들어냈을 거라는 유쾌한 추측>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12간지 이야기이다. 상여가마의 알록달록한 외관을 살피면서 다음과 같은 재미난 이야기를 해준다.
“하얀색은 양, 초록색은 개, 인주색은 말, 파란색은 닭... 상여를 둘
러싼 열두 마리 동물들의 등에 올라탄 시립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다. <...> 시간도 열두 시간, 일 년도 열두 달, 소띠 개띠도 열두 개. 옥황상제께서 천국으로 가는 문을 지키려고 동물들에게 선착순집합을 시키셨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일 것이다. 발톱 네 개짜리 우직한 황소가 먼 길을 달려와 결승점을 짚는 순간 소등에 무임승차한 앞 발가락이 네 개, 뒤 발가락이 다섯인 쥐가 펄쩍 뛰어내려 1등 자리를 빼앗았다. 이어서 발가락 다섯인 호랑이가 3등, 네 개짜리 토끼가 4등, 용이 5등, 몸뚱이뿐인 뱀이 6등, 다시 이어서 말, 양, 닭, 돼지 순으로 선착순 경주가 끝이 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발가락 수가 홀수와 짝수로 번갈아가며 어긋났다. 홀은 양이 되고 짝은 음이 되었단다. 숨은 얘기로는 그믐밤에도 십 리 밖을 헤아리는 고양이가 문지기로 자리매김 되었으나 쥐의 간교로 자리를 잃게 되어 지금까지도 쥐를 찾아 발톱을 세우고 있단다.”
이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으니 기분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또, 발가락 숫자를 홀수와 짝수로 나누어 음과 양이 되는 이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열두 가지 동물의 순서는 우리의 시간에까지도 간섭의 폭을 넓혔다. 으슥한 밤 풀방구리 드나드는 쥐가 바빠질 때가 자시(밤11시-새벽1시), 저녁 내내 되새김질한 소가 뒤척일 때가 축시(새벽1시-3시), 호랑이가 배가 고파 사나워질 때가 인시(새벽3-5시), 새벽하늘에 걸린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보일 때가 묘시(새벽5-7시),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깃들어 주인집 밥값 대신 문단속할 개가 바빠질 때가 진시(아침 7-9시)... 돼지가 잠에 곯아떨어질 때가 해시(밤9-11시)이다”
아빠가 애한테 이야기해주는 듯한 이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일곱, 여덟살의 소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이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이 궁금했던, 어른들은 미운 일곱 살이라 부르는, 그런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