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로드란 소설을 읽고 이런 작가가 다 있네.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우연히 어제 도서관을 빙빙 돌다 마치 일본소설 같은 제목에 코맥 메카시란 이름이 인쇄되어있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책장에서 꺼냈다.
공군이었다는 것을 읽자 셍텍쥐베리가 떠올랐다.
뭔가 분위기가 비슷했다.
소몰이용 말을 다루던 16세의 카우보이 소년 존 그래디 콜과 롤린스. 이 책은 그 중 존의 이야기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촛불과 거울 속 촛불의 상이 비틀거리다 우뚝 섰다. 문이 닫히자 또다시 비틀거림과 곧추섬이 반복됐다’로 시작되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인생이란 촛불처럼 비틀거리다 우뚝서고의 반복이니까. 사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되기까지 꽤 읽기 불편했다. 코맥씨는 친절한 리얼리즘으로 묘사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물론 번역본이라서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내가 영어권의 사람이었어도 읽기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번역한 사람이 위대해보였다)
‘그는 늘 달리던 곳으로 말을 몰았다. <....> 그는 늘 달리던 시간에 말을 몰았다. <...> 그가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았다. 그들에게는 피가 있고 피에는 열기가 있다. 그의 모든 존경과 모든 사랑과 모든 취향은 뜨거운 심장을 향한 것이었고, 그것은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었다’
이 소설은 마치 무뚝뚝하고 불친절하지만 사물을 디테일하게 볼 줄 아는 남성의 시선 같은 느낌으로 흘러간다. 말과 함께 일생을 살고픈 존 그래디는 자신의 베프인 롤린스와 함께 멕시코로 오직 말만 타고 떠난다. 그러다 블레빈스라는 사고뭉치이지만 애정이 가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사건이 터지게 된다.
‘말을 타고 지나가는 그를 두고 뭐라고 평하거나 서로 수군대거나 손을 들어 올려 인사하거나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이는 아무도 없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안다는 듯이. 그들은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그를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저 그가 지나가는 길이기에. 그저 그가 살아질 것이기에. <...> 기다란 검은 그림자는 마치 세상에 유일한 존재의 그림자인 양 말을 바싹 뒤따랐다. 그러다 어두워지는 땅속으로, 다가올 세상 속으로 점점 사라져갔다’
나이 먹으면서 표현능력이 딸려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 지 모르겠지만.. 저런 담담한 어투에서 나오는 인생의 진실이 참 좋았다.. 모두가 많이 듣고 읽어 잘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는 인생의 진실. 그것을 참 군더더기 없이 코맥씨는 표현했다.
최근 베트남의 피가 흐르긴 하지만 한국 소년인 완득이와 ‘오 마이 잉글리쉬 보이’에 나오던 중국소년 류아이의 성장소설을 읽어서인지.. 이 동양 소년들과 비교하기에 존 그래디는 너무 애늙은이였고... 역시나 결론은 백인은 동양인에 비해 발육이 빨랐다? 는 것이었다...
참 멋있는 녀석이었다. 존 그래디.
완득이나 류아이에겐 없는 그런 야성의 매력이 있었다.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간만에 뻔하지 않은 줄거리의, 재밌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