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역사는 서사다. 더 이상은 에피소드가 아니다”라고 독자에게 외치는, 독일에서 오래 공부하다 오신 백승종 님의 작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고전 중의 고전을 쓴 카부터 시작하여 [역사]라는 학문은 연구자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나 보다. 그러나 사극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은 선한 조상을 드라마화하여 ‘거봐라, 우리는 백의민족이다’라고 자랑질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물론, 나도 그 백의민족 중 한명이기 때문에. 이렇게 역사가 흥미로운 학문 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최신 유명한 사극의 시대의 정치적 인물에 대해 술자리에서, 커피숍에서 많은 대화거리를 형성하게 한다. 마치 우리의 의무는 끊임없이 그 뿌리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듯이.
패관소품, 정감록, 천주교, 신유박해. 성리학 vs 해도진인설 이라는 문화투쟁. 이 책의 주요 테마들이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강이천은 이 책에서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씨에 해당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강이천이 역사라는 지난 페이지에 넘어간 에피소드의 인물이 아닌 지금도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는 서사 속의 주인공으로 살리려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조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이 지은이의 의도일 것이다. 이런 의도는 다음과 같은 책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나있다.
“나의 가정 : 정조의 보수개혁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조를 조선을 부흥시킨 르네상스 군주라며 추켜세운다.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조의 개혁 개방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곤란하다. 내가 보기에 정조는 노회한 정략가였다. 그는 조선 왕조의 국시인 성리학 이념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썼다. <...> 변화를 희석시키기 위해 최소한의 변화를 용납하는 것, 이것이 정조의 전략이었다. <...>정조는 자신의 보수개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일종의 보수대연합을 구축했는데 그의 탕평이란 이 정책의 다른 이름이었다. “
이 파트에서 작가는 김홍도와 정약용은 정조의 탕평극의 인형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따지고 보면 사회적 실상과 부합되지 않는 체제 선전 그림이라는 점,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구나 다 행복한 표정이라는 사실이 김홍도와 정조의 밀착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한다. 정조는 사실주의적 화풍 또는 사회비판적 화풍의 확산을 막기 위해 김홍도를 선택했고, 그것은 정조와 김홍도에게 기쁨을 선사했다고 여겨진다. 어딘가 새로운 듯하면서도 결국은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확인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김홍도의 역할이었다. <...> 정약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정치적으로 거꾸러지고 만 것은 사실 그 자신의 개혁 성향때문이 아니라 친형제인 정약종의 천주교 활동이 친체제 지식인 정약용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
정조는 성리학으로서 자신의 부실했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이에 대한 프로젝트로 김홍도와 정약용이라는 이과와 예체능과를 이용했던 것이라는 흥미로운 내용을 제시해준다. 나아가서 청나라도, 우리나라도 무너지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거스를 수 없는 개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먼저 알아챈 사람으로 태독으로 좌시에 다리에 늘 종기가 끊이지 않아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몸을 소유한 감수성이 예민한 강이천이라는 불량선비를 주인공으로 들이고 있다.
이 책에는 1791년 신해박해(신해사옥·진산사건(珍山事件)이라고도 한다. 가톨릭교가 해서(海西)·관동(關東) 지방의 민중 사이에 신봉되고 있는 동안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1791년 전라도 진산군(珍山郡)의 선비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윤치중의 外弟)이 윤지충의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여 신주(神主)를 불사르고 가톨릭교식으로 제례(祭禮)를 지냈다는 소문이 중앙에 들어오자, 권상연 등이 호남 출신이라는 데서 문제가 야기되었다. -[출처] 신해박해 [辛亥迫害], 네이버 백과사전) 에 대해 나와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천주교를 박해한 사건이다. 220년이 지난 지금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대해 불효죄를 선고하는 이 나라에서 정말 대단히 선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박해는 알고보면 종교를 앞세운 정치적인 사건이었다. 오늘 날, 국민들이 비판하는 정치인물은 그 인물의 종교까지 함께 쌈싸먹는 이 버릇은 이때부터 시작이었군이라는 씁쓸한 추측을 하며..
재미있었다. 조금 더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마치며, 조선왕조 27대 왕을 쉽게 외우는 법에 대해 탁성준선생님이라는 분이 그렸다는, 그림을 첨부한다. (요새 애들은 이렇게 외우는 구나)